경빈 박씨 (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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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요약
- ~ 1533년 6월 25일 ( 음력 5월 23일 ) )는 조선 중종의 후궁이다.
- 1507년(중종 2년) 종2품 숙의 (淑儀)에 봉작되었으며, 1509년(중종 4년) 중종의 장자 복성군(福城君)을 낳았고, 이후 혜순옹주와 혜정옹주를 출산하며 중종의 총애를 받았다.
- 1517년(중종 12년), 장경왕후의 상을 마치고 새로운 왕비를 책봉하는 일과 관련하여, 경빈은 당시 중종의 맏아들을 낳은 생모이자 가장 총애를 받는 후궁으로서 중전의 재목으로 거론되며 스스로도 중전의 자리에 오르기를 희망하였다.
- 마침내 경빈의 뜻은 저지되고 중종은 새로운 왕비를 맞기로 결정하였다.
- 1522년(중종 17년), 사간원 대사간 서지 등이 상소를 올려 왕실의 법도를 비판하고, 왕자와 왕녀들의 혼례와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저택에 대해 정도에 지나치다며 비판하였는데, 이때 경빈 또한 거론되며 "박빈(朴嬪)이 국가에 공덕이 있지도 않으면서 지위가 1품에 오르고 총애가 후궁들 중에 제일이라 하니, 신 등은 전하께서 사정에 치우쳐서 집안을 다스려가는 정사에 누덕(累德)이 될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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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ummary
Wikipedia경빈 박씨(敬嬪 朴氏, ? ~ 1533년 6월 25일(음력 5월 23일))는 조선 중종의 후궁이다. 중종의 장자인 복성군을 낳아 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작서의 변에 연루되어 세자(인종)를 저주하였다는 무고를 받아 폐서인되었고, 이후 복성군과 함께 사사되었다
본관은 상주
연산군 재위 시절에 흥청을 선발할 때, 그녀의 자색이 아름답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고, 중종반정 이후 추천을 받아 궁에 들어와 중종의 후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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