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 전쟁
8세기 말~9세기 초 고려와 요나라 간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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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요약
- 고려-거란 전쟁 은 993년, 1010년, 1018년(또는 1019년)에 고려와 거란의 요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 특히, 거란과 고려의 3차에 걸친 전쟁은 한국 역사에 큰 충격과 영향을 끼친 사건이다.
- 배경 궁예가 901년 후고구려를 건국할때 지금의 몽골과 만주지방에는 거란족과 여진족이 유목생활을 하고 있었다.
- 922년(태조 5년) 야율아보기는 고려에 낙타와 말을 보내기도 하였다.
- 한편 거란에 대해서 ‘금수지국(禽獸之國)’이라 부르고 적대적 태도를 보이며, 북진 정책을 실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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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ummary
Wikipedia고려-거란 전쟁은 993년, 1010년, 1018년(또는 1019년)에 고려와 거란의 요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던 고려와 요나라는 정치·경제·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교류가 빈번하게 행해졌다. 특히, 거란과 고려의 3차에 걸친 전쟁은 한국 역사에 큰 충격과 영향을 끼친 사건이다. 993년(성종 12년) 10월 소손녕의 침입, 1010년(현종 1년) 11월 강조(康兆)가 목종을 시해한 죄를 묻는다는 구실로 요 성종의 직접 침입, 1018년 12월 소배압의 침입의 세 번의 큰 전쟁과 1015년 소적렬의 흥화진 내침 까지를 통틀어 말한다.
궁예가 901년 후고구려를 건국할때 지금의 몽골과 만주지방에는 거란족과 여진족이 유목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 중 거란족은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907년 통일한 뒤, 916년 요나라(遼)를 건국하였다. 922년(태조 5년) 야율아보기는 고려에 낙타와 말을 보내기도 하였다. 발해 13대 왕이 있을때부터 발해인이 고려로 귀순하기 시작했으며 926년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키자 대광현은 발해 유민과 고려에 귀순했다. 한편 거란에 대해서 ‘금수지국(禽獸之國)’이라 부르고 적대적 태도를 보이며, 북진 정책을 실행하였다. 942년 요 태종이 낙타 50필을 보내자 고려 태조는 사신 30인은 섬으로 유배를 보내고 낙타는 만부교(萬夫橋)에서 굶겨 죽여버렸다.
이는 북진정책의 일환으로 취해졌고, 그 뒤에도 계승되어 고려 정종 때에는 광군(光軍) 30만명을 양성하였고, 광종 때에는 서북쪽에 맹산·숙천·박천·문산 등 청천강 유역과, 동북쪽으로는 영흥·고원 등에 성을 쌓거나 군사시설을 갖추고, 또 광군을 광군사(光軍司)로 개편하는 등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고려는 송나라가 건국한 이후, 송과 화친정책을 실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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