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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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요약
- ~ 945년 이후)은 고려(高麗)의 왕자(王子)이자 태조(太祖)와 소광주원부인(小廣州院夫人)의 아들이며 고려(高麗)의 왕족(王族)이고 본관은 개성(開城)이다.
- 이름은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알 수 없다.
- 이후에도 왕규는 혜종의 침소에 자객을 또 보냈으나, 혜종은 최지몽의 예언을 듣고 자리를 피해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 결국 이 해 음력 9월 왕규는 왕요와 왕식렴의 군대에 의해 진압당한 후 참수되었다(왕규의 난).
- 이는 왕규가 광주원군을 보위에 올린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라는 시각에 기인한 것으로, 광주원군이 적통도 아닐 뿐더러, 이는 태조의 유훈인 훈요십조와도 어긋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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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ummary
Wikipedia광주원군(廣州院君, ? ~ 945년 이후)은 고려(高麗)의 왕자(王子)이자 태조(太祖)와 소광주원부인(小廣州院夫人)의 아들이며 고려(高麗)의 왕족(王族)이고 본관은 개성(開城)이다.
태조 왕건의 아들로, 어머니는 경기도 광주 출신의 호족 왕규의 딸인 소광주원부인으로 이 둘 사이에서 태어났다. 성은 왕, 본관은 개성이다. 이름은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알 수 없다.
945년(혜종 2년), 외조부인 왕규가 혜종을 죽이고 광주원군을 왕위에 올리려고 혜종의 침소에 자객을 보냈으나, 혜종이 자객들을 직접 때려 죽이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으며, 혜종은 이 일을 불문에 붙였다. 이후에도 왕규는 혜종의 침소에 자객을 또 보냈으나, 혜종은 최지몽의 예언을 듣고 자리를 피해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또 왕규는 혜종이 죽더라도 왕요(훗날 정종)와 왕소(훗날 광종)가 있어 광주원군이 보위에 오르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 혜종에게 두 사람을 참소하였으나, 혜종이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이 해 음력 9월 왕규는 왕요와 왕식렴의 군대에 의해 진압당한 후 참수되었다(왕규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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