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점
조선시대 후기의 문신, 정치가, 군인, 성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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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요약
- 김자점 (金自點, 1588년~1652년 1월 27일(1651년 음력 12월 17일))은 조선 후기의 문신, 정치인, 군인이다.
- 낙안 군수를 역임한 임경업과 연관되어 전라도 낙안군에서 출생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 음서제로 관직에 올라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에 이르렀으며 낙흥부원군에 봉군되었다.
- 이괄의 난 때에는 옥에 갇힌 기자헌 등 북인 인사 40명의 전격 처형을 건의하기도 했다.
- 이후 유배되었다가 아들 김식의 역모사건이 발생하자 사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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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ummary
Wikipedia김자점(金自點, 1588년~1652년 1월 27일(1651년 음력 12월 17일))은 조선 후기의 문신, 정치인, 군인이다. 자(字)는 성지(成之), 호는 낙서(洛西), 본관은 안동이며, 출생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낙안 군수를 역임한 임경업과 연관되어 전라도 낙안군에서 출생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그는 인조 반정에 참여하였고 귀인 조씨의 인척이었으며 친청파 정치인이었다. 음서제로 관직에 올라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에 이르렀으며 낙흥부원군에 봉군되었다.
인조 반정의 모의에 가담하였으며 1623년 3월 반정을 꾀해 군대를 모아 홍제원에서 이괄 등의 군사와 합류하였고 반정에 성공한 공로로 동부승지(同副承旨)로 특별 승진하고, 도원수가 되었으며, 정사공신(靖社功臣) 1등관에 녹훈되고 낙흥군(洛興君)에 봉해졌다. 이괄의 난 때에는 옥에 갇힌 기자헌 등 북인 인사 40명의 전격 처형을 건의하기도 했다. 그뒤 도원수로 병자호란 당시 대처미숙으로 파면되었다가 복직하여, 병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이 되고 심기원 일파를 제거한 뒤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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