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종
대한민국의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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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요약
- 박찬종 (朴燦鍾, 1939년 4월 19일 ( 1939-04-19 ) ~ )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제9·10·12·13·14대 국회의원이다.
- 1958년에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진학하였다.
- 이후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1971년에 제8대 총선에서 민주공화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자 변호사로 개업하였다.
- 1976년 38세에 2차 투표까지 가는 박빙의 승부 끝에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에 당선되었다.
- 이어 제10대 총선에서도 당선되지만 10·26 사건 이후 공화당 내에서, 권력으로 치부한자, 해바라기정치인 등의 자퇴 또는 당직에서 제외를 요구하는 등 정풍운동을 주도하는 한편 국회개헌특위 위원으로 활동하다 1980년 4월 7일 공화당에서 제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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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ummary
Wikipedia박찬종(朴燦鍾, 1939년 4월 19일(1939-04-19) ~ )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제9·10·12·13·14대 국회의원이다. 호(號)는 우당(尤堂)이다.
1939년 4월 19일에 경상남도 김해군에서 출생했다. 1958년에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진학하였다. 재학 중에 고등고시 사법과와 고등고시 행정과, 공인회계사 시험에 모두 합격하였다. 이후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1971년에 제8대 총선에서 민주공화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자 변호사로 개업하였다. 1972년 10월 17일에 10월 유신과 함께 국회가 해산되자 이듬해 1973년에 실시된 제9대 총선에서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중선거구제로 변경된 선거법에 따라 2위로 당선되었다. 1976년 38세에 2차 투표까지 가는 박빙의 승부 끝에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에 당선되었다. 민주공화당 국회의원으로서 그는 간이공판제도의 신설에 반대하고 유신정우회 의장의 아내 비서관 채용을 비판하는 등 여당 의원 내의 야당 의원으로 불렸다. 이어 제10대 총선에서도 당선되지만 10·26 사건 이후 공화당 내에서, 권력으로 치부한자, 해바라기정치인 등의 자퇴 또는 당직에서 제외를 요구하는 등 정풍운동을 주도하는 한편 국회개헌특위 위원으로 활동하다 1980년 4월 7일 공화당에서 제명되었다.
1980년 8월 전두환이 유신헌법하의 11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이어 10월 제5공화국 헌법이 국민투표를 통과하면서 10대 국회가 해산되자 11월 정치규제대상 811명에 포함되었다가 곧바로 해금되었다. 1981년 3월의 11대 국회의원선거에는 출마하였다가 중도 사퇴하였다. 1983년 《부끄러운 이야기》를 펴내 유신정권에 참여한 과거를 반성하였고, 1985년 1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김영삼, 김대중이 주도한 신한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여 부산에서 출마, 당선되었다. 민주화추진협의회의 인권옹호위원장, 신한민주당의 인권옹호위원장으로서 1985년 5월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이 터지자 함운경, 김민석 등 점거주동 대학생들의 변호를 맡아 운동권 학생들을 변호하는 인권변호사로서 이름을 날리게 되었고, 이해 9월 '고대앞시위사건'으로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기소되어 3년 6개월간 변호사 업무를 정지당하였다. 박종철군 사망사건에서도 고문치사사건 진상규명 위원장으로서 사인을 고문에 의한 것으로 밝히는데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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