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시성
고구려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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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요약
- 안시성 (安市城)은 삼국시대에 고구려와 당(唐)나라의 경계에 있던 산성으로 안시성 전투가 일어난 곳이다.
-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봉황성을 안시성이라고 불렀다.
- 소재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 또한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안시'는 '봉황'을 뜻하고 안시성은 곧 봉황성이라 하였다.
- 《삼국사기》 지리지에 따르면 본래 이름은 안촌홀(安寸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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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ummary
Wikipedia안시성(安市城)은 삼국시대에 고구려와 당(唐)나라의 경계에 있던 산성으로 안시성 전투가 일어난 곳이다. 중국 안산시 (랴오닝성) 하이청 시 남동쪽의 잉청쯔(英城子)에 위치해 있었다고 추정하는 견해가 가장 유력하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봉황성을 안시성이라고 불렀다.
당시 인구가 10만 명 정도였던 고구려 영지로, 고구려가 요하(遼河)유역에 설치하였던 방어성들 가운데 전략적으로 요동성(遼東城) 다음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소재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금사》 지리지에 따라 만주 개평(蓋平) 동북의 탕지보(湯池堡)라 하기도 하고, 《이계집(耳溪集)》 또는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에 따라 만주의 봉황성(鳳凰城)이라 하기도 하였다. 또한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안시'는 '봉황'을 뜻하고 안시성은 곧 봉황성이라 하였다. 그러나 지금의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창다철도[長大鐵道]의 하이청[海城] 남동쪽에 있는 잉청쯔[英城子]로 추정하는 견해가 가장 유력하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따르면 본래 이름은 안촌홀(安寸忽)이다. 안시성은 자연적으로 험준한 요새였으며 주변에 병기의 주원료인 철광석 산지와 곡창지대가 있었다. 신성(新城:지금의 만주 푸순[撫順] 부근)과 건안성(建安城:지금의 만주 가이핑[蓋平]) 중간에 자리잡고 있어 안시성의 방어는 요동지역의 여러 성들을 방어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으며, 압록강 북쪽의 오골성(烏骨城)·국내성(國內城)을 비롯하여 전국의 성을 수호하는 데에도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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