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
대한민국의 역사학자 (1896–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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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요약
- 이병도 (李丙燾, 1896년 9월 20일~1989년 8월 14일)는 대한민국의 역사학자이고, 제7대 문교부 장관을 지냈다.
- 일생 일제강점기 조선사 편수회에서 수사관보와 촉탁으로 참여하였다.
- 이병도가 조선사 편수회에 있을 때 한국사를 왜곡하고 식민사관을 정립하는데 기여했다는 주장이 있다.
- 경성제국대학 교수, 서울대학교 교수, 서울대학교 대학원장, 학술원 회장, 진단학회 이사장, 민족문화추진회 이사장, 국방부 전사편찬위원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문교부 장관 등을 역임하였다.
- 내무부장관 윤치영의 처남이며, 서울대학교 총장 이장무와 문화재청장 이건무는 그의 손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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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ummary
Wikipedia이병도(李丙燾, 1896년 9월 20일~1989년 8월 14일)는 대한민국의 역사학자이고, 제7대 문교부 장관을 지냈다. 호는 두계(斗溪, 杜溪)이고, 본관은 우봉(牛峰)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사 편수회에서 수사관보와 촉탁으로 참여하였다. 이때의 경력으로 인해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표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다. 이병도가 조선사 편수회에 있을 때 한국사를 왜곡하고 식민사관을 정립하는데 기여했다는 주장이 있다. 1934년, 일본인을 배제한 민간학술단체인 진단학회를 창설하여 한국사를 연구했다. 경성제국대학 교수, 서울대학교 교수, 서울대학교 대학원장, 학술원 회장, 진단학회 이사장, 민족문화추진회 이사장, 국방부 전사편찬위원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문교부 장관 등을 역임하였다. 《국사대관(1948년)》을 비롯하여 한국의 역사와 사상, 문화에 관한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내무부장관 윤치영의 처남이며, 서울대학교 총장 이장무와 문화재청장 이건무는 그의 손자이다. 실증적·객관적 방법을 중시하는 실증사학(實證史學)을 추구하여 한국근대사학이 성립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고 평가된다.
그는 조선 시대 후기인 1896년 9월 20일(음력 8월 14일)에 경기도 용인군 이동면 천리(泉里)에서 충청도 수군절도사 이봉구와 그의 부인인 나주 김씨 사이의 오남으로 출생하였다. 한성부에서 성장하였으며 1907년 11월에 부친이 작고하였다. 1907년 이종일 선생이 교장으로 있던 보광학교에 입학하여 이 학교가 재정난으로 폐교하는 1909년까지 수학하였다. 15세였던 1910년에 육군 참장 조성근의 장녀 조남숙과 결혼하였다. 같은 해 3월에 사립 중동학교를 졸업하였다. 1912년 3월 보성전문학교(현재 수송동 조계사 자리) 법과에 입학하여 1915년 3월에 졸업했다. 1916년 4월에 와세다 대학 사학 및 사회학과(史學及社會學科)에 입학하여 1919년 7월에 졸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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