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묘호란
인조(仁祖) 5년(1627년) 만주(滿州)에 본거지(本據地)를 둔 후금(後金)의 침입(侵入)으로 시작(時作)된 조선(朝鮮)과 후금 간(間)에 치열(熾烈)한 큰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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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요약
- 정묘호란 (丁卯胡亂)은 1627년(인조 5년)에 후금이 침입해 일어난 전쟁이다.
- 배경 선조(宣祖)의 뒤를 이은 광해군(光海君)은 내정과 외교에 그의 비범한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여 임진왜란 뒤의 사고 정비, 서적 간행, 호패의 실시 등으로 눈부신 치적을 올렸다.
- 1619년 명나라가 후금을 치기 위하여 만주로 출병하였을 때는 그 요청에 못 이겨 강홍립(姜弘立)으로 하여금 1만여의 군대를 거느리고 원조케 하였으나, 광해군은 강홍립에게 형세를 보아 향배를 정하라는 밀지를 주었다.
- 본래 홍타이지(청 태종)는 즉위 전부터 조선에 대한 화평 방침에 반대하여 주전론을 주장하여 왔는데, 이는 청나라의 남진 정책에 대한 배후의 우려를 제거하기 위함에서였다.
- 그러나 1622년 명나라 장수 모문룡이 광해군의 권유로 평안북도 철산의 가도에 주둔하여 요동의 회복을 획책하며 후금을 자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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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ummary
Wikipedia정묘호란(丁卯胡亂)은 1627년(인조 5년)에 후금이 침입해 일어난 전쟁이다. 인조 즉위 후 집권한 서인의 친명(親明) 정책과 누르하치의 조선에 대한 주전(主戰) 정책의 충돌에 기인한 싸움이며, 이로 말미암아 후금은 명나라와는 불가능하였던 교역의 타개책을 조선에서 얻게 되었다.
선조(宣祖)의 뒤를 이은 광해군(光海君)은 내정과 외교에 그의 비범한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여 임진왜란 뒤의 사고 정비, 서적 간행, 호패의 실시 등으로 눈부신 치적을 올렸다. 밖으로는 1616년 여진족 누르하치가 세운 후금이 만주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국제 정세에 대처하여 현란한 외교 정책을 써서 국제적인 전란에 빠져 들어가는 것을 피하려 노력하였다.
1619년 명나라가 후금을 치기 위하여 만주로 출병하였을 때는 그 요청에 못 이겨 강홍립(姜弘立)으로 하여금 1만여의 군대를 거느리고 원조케 하였으나, 광해군은 강홍립에게 형세를 보아 향배를 정하라는 밀지를 주었다. 사르후 전투(1619)에서 명은 대패하였고, 이어 아부달리 전투(1619)에서도 연패한 명군이 불리한 상황에서 부차 전투(1619)에서 포위 공격을 당해 고립된 강홍립은 후금에 항복하였고, 이 때문에 후금의 조선에 대한 보복적 행동을 하지 않았으며, 양국 간에 별 사단이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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