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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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요약
- 진린 (陳璘, 1543년~1607년)은 중국 명나라 시대의 광동성(廣東省) 출신의 무관(武官), 장군(將軍), 제독(提督)이다.
- 1562년 명나라 관직에 출사하였다.
- 만력(萬曆) 초기, 광동성 고요(高要)와 게양(揭陽) 및 산인(山人) 종월천(鍾月泉)의 반란을 진압하였다.
- 그해 8월, 조주(潮州) 해적 제량보(誅良寶 혹은 주량보朱良寶) 등을 토벌한 공으로 승진되고 포상받았다.
- 만력5년(1577) 5월, 나방(羅旁)을 평정한 공으로 부총병(副總兵) 관함(官銜)이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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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ummary
Wikipedia진린(陳璘, 1543년~1607년)은 중국 명나라 시대의 광동성(廣東省) 출신의 무관(武官), 장군(將軍), 제독(提督)이다.
가정22년(1543) 명나라 광동성(廣東省) 소주부(韶州府) 옹원현(翁源縣) 용전포(龍田鋪)(현재 광둥성廣東省 샤오관시韶關市 웡위엔현翁源縣 저우피진周陂鎭 롱톈촌龍田村)에서 태어났다. 1562년 명나라 관직에 출사하였다. 가정41년(1562), 광동성 조주(潮州)와 영덕(英德) 등지에 수만 명의 평민이 반란을 일으키자, 진린은 가서 진압하였고, 광동수비(廣東守備)로 승진하였다. 만력(萬曆) 초기, 광동성 고요(高要)와 게양(揭陽) 및 산인(山人) 종월천(鍾月泉)의 반란을 진압하였다. 만력3년(1575), 광동도사첨서서도지휘첨사(廣東都司僉書署都指揮僉事)에서 광동조경유격장군(廣東肇慶遊擊將軍)으로 승진하였다. 그해 8월, 조주(潮州) 해적 제량보(誅良寶 혹은 주량보朱良寶) 등을 토벌한 공으로 승진되고 포상받았다. 만력4년(1576) 2월, 광동 고주참장(高州參將)에 임명되었다. 만력5년(1577) 5월, 나방(羅旁)을 평정한 공으로 부총병(副總兵) 관함(官銜)이 더해졌다. 만력9년(1581), 남경병과급사중(南京兵科給事中) 이국관(李國觀)과 어사(御史) 장일곤(張一鯤) 등이 군정 업무에 관하여서 진린 등의 군관들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지만, 진린은 유임되었다. 만력11년(1583) 4월, 순안광동어사(巡按廣東御史) 나응학(羅應鶴)이 3개월치 병향(兵餉)을 삭감하고 병사 300명을 뽑아서 묘당과 사찰을 지어서 병사들의 원한을 사게 한 죄로, 분수동산부총병 관참장사(分守東山副總兵管參將事) 직에 있던 진린을 탄핵했다. 만력제는 진린을 혁직시키고 관장하는 일을 그대로 유지시켜서 공을 세워 속죄할 것을 명령하였다. 이후 만력12년(1584) 원직에 복귀하였다. 그해 9월, 좌부총병(左副總兵)에서 제독낭산등처지방부총병(提督狼山等處地方副總兵)로 승진하였으나 이후 파직되었다.
만력20년(1592) 6월, 조선으로의 일본군 침입에 대항하고자, 왜정(倭情)에 밝은 진린을 신기칠영연용참장(神機七營練勇參將)으로 기용, 그해 10월 신추우부장(神樞右副將) 혹은 신기영우부장(神機營右副將)으로 기용하였다. 만력21년(1593) 정월, 협수계진부총병서도독첨사(恊守薊鎮副總兵署都督僉事)에서 계료보정산동등처방해어왜부총병(薊遼保定山東等處防海禦倭副總兵)에 임명되었다. 일본군이 조금 물러나자 조정은 전쟁에 질려버려서, 그해 6월 17일, 진린을 계료보정산동등처방해어왜부총병서도독첨사(薊遼保定山東等處防海禦倭副總兵署都督僉事)에서 협수조장등처(恊守潮漳等處)로 전근시켰다. 만력25년(1597) 9월 9일, 부총병(副總兵)으로 기용되어 광동영(廣東營) 병사 5천을 이끌고 조선을 구원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같은해 10월 17일, 광서(廣西) 잠계(岑溪) 이민족 토벌의 공이 있다는 이유로 진린을 서도독첨사(署都督僉事)에서 도독첨사(都督僉事)로 정식 임명하였다. 만력26년(1598) 2월 23일, 명 조정은 부총병도독첨사(副總兵都督僉事) 진린을 어왜총병관(禦倭總兵官)에 임명하고 이를 상징하는 관인(官印)인 관방(關防)을 주조하여 진린에게 지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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